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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역사에서 중심국 역할을 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강이나 바다에 인접한 지역에서 출현하고 발전했으며, 이를 근거로 독일의 지리학자 칼 리터(Karl Ritter : 1779∼1859)는 인류 문명이 하천문명→내해문명→대양문명의 순으로 발전했다는 인류 문명의 변화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지중해는 많은 반도와 섬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조류가 거의 없고, 기상조건이 비교적 좋기 때문에 육상교통보다 더 용이하고 신속한 해상교통의 요건을 구비하고 있다. 따라서 지중해는 일찍부터 문명의 전파, 무역, 해적, 해전 등의 무대가 되었으며, 그 결과 서양의 역사는 사실상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문명

지중해 동부에 속하는 에게해의 크레타섬에서 발생하는 미노아 문명(기원전 2000∼1450)과 그리스의 미케네문명(기원전 1600∼1100)은 바다를 통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 이 두 문명은 일상용품과 곡식을 수입할 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해상로의 주 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해상으로의 진출 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노스왕은 함대를 이용하여 해적을 일소한 후 수세 기 동안 해상질서를 유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인들은 동방과 서방을 잇는 무역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했다. 나아가 에스파냐, 영국,에트루리라,발트해에 이르는 곳까지 해상무역 활동을 전개하여 해상 왕국을 건설하였다. 
 

한편 중동의 페니키아는 지중해 연안에 상업도시들을 건설한 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이미 기원 전 1100∼750년에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페니키아는 기원전 700년에 상선과 군함을 구분하여 건조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해양력과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바이킹 시대

8세기에 유럽의 북부와 남부에서 또 다른 민족들이 해상의 강자로 출현하였다. 바이킹은 북해와 발트해 연안에서 8세기부터 상업활동을 하다가 영국과 세느강유역을 침공하고 지중해 동부 해역으로까지 진출하였다.
 

그들의 활발한 해상진출은 자신들의 전통선박인 바이킹 선을 갖고 서 해양 생물, 바다 색깔, 풍향, 밧줄에 의한 수심 측정술 등을 이 용하여 원양을 능숙하게 항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바이킹의 활동은 북부 유럽의 생산활동과 상업의 발전으로 이어져 결국 도시를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도시들 중 일부가 13세 기에 한자동맹을 체결하여 상거래를 독점했는데, 14세기에는 80여 개의 도시가 이 동맹에 참가했고 유럽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한편 남부 유럽에서는 8세기부터 이슬람인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 그들은 에스파냐를 정복했으며, 2차례에 걸친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승리하였다. 흔히 사라센제국으로 불리는 이 이슬람왕국은 10세기 초에 시칠리아와 크레타를 점령했으며, 이어서 아프리카 북부연안 전체를 점령하여 유럽인들의 해상활동을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해양도시국가

중세 유럽 사회에서 해상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한 것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었다.

 

이때부터 대 동방 무역로가 페르시아에서 홍해와 이집트로 변경되었고, 선박을 보다 안전하고 저렴한 운송 수단을 인식하였으며, 선박 용량이 증가하였고 항구이용료가 저렴했으며, 나침반·해도 등 항해보조기술이 발전하였고, 남부 유럽의 해상항로 주변에 항구 도시가 발달하였다. 
 

이들은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인들이 정주활동을 시작하는 등과 같은 여러 요인들 덕분에 도시 국가들은 해상 무역을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이들 도시국가들에 의해 새로운 상업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근대 유럽을 개막한 르네상스는 바로 이 도시 국가들이 활발하게 해상 활동을 한 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항해시대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서유럽에서도 서구의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대항해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항해는 지도와 해도의 제작술을 비롯한 지리학의 발달, 나침반의 전래, 항해 도구의 발달·항해 안내서의 발달·해양 관련 지식의 축적을 바탕으로 한 항해술의 발전, 캐라벨과 같은 대항해용 선박의 발달 등과 같은 과학의 발전과 기독교의 선교 열망, 대담한 선원의 출현, 엔리케 같은 선구자들의 출현, 지중해 서부 지역의 인구 과잉, 경제 위기의 타개책 필요 등과 같은 인간 세계의 변화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베리아반도인들에 의해 14세기부터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베리아인들의 이러한 해양 활동은 사그레스에 해양학교의 설립, 여러 항해가들의 15세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탐험, 16세기 전반기의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계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는 16세기부터 대항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유럽 세계는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품종의 식물을 받아들여 주기적으로 나타나던 식량위기를 완화할 수 있었고 가격 혁명과 사회구조의 급변을 초래한 자본주의를 확립시켰으며, 노예제와 인도주의적 이상을 동시에 정립하였다. 
 

대항해 시대는 세계 경제를 출범시키고 근대 산업 발전의 서막을 열었던 시대이자 유럽의 팽창 시대였는데, 이것은 그 후 식민지 건설 경쟁이 전개되었다는 사실로 입증 될 수 있다.

 

 

 

 

식민지 건설의 시대

식민지 제국은 토르데실라스 조약(1494년)의 체결이후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15∼16세기에 나타난 식민지 건설로 말미암아 금·은·향신료·밀·노예의 수요 증가와 국익의 상승을 통해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고, 각 계층의 열망에 의해 식민지 건설의 움직임이 더욱 역동적인 사태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와 귀족층 사이의 경쟁이 유발되었으며, 선교·교육·구호 등으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16∼17세기에 이르자 이 식민지 건설 운동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로 확산되었다. 
 

식민지 활동은 크고 많은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경제의 중심축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였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인들에게 주어졌으며, 농업 기술의 혁신과 교류가 전개되었고, 다양한 문화들의 상호교류도 이루어졌다. 
 

실제로 1610∼40년에 유럽의 무역량이 10배로 증가했고, 또한 경쟁국들이 해상무역을 서로 통제하고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는데, 18세기에 이르자 국제 해상무역의 선두자리가 영국에 돌아갔다.  


 

산업혁명시대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발판으로 삼아 18세기 후반기부터 산업 혁명을 최초로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고 세계 제일의 부국이 되었다. 
 

영국의 기술·상업·금융에 관한 정보가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어 19세기에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공업화가 추진되었다. 그 결과 유럽에서 철도망의 건설, 대서양 횡단 전신의 가설, 운하의 건설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공업 강대국 간의 균형이 파괴되고 그 대신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국의 경제적 패권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이 발전은 해양 활동의 수단을 발전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19세기 전반기에는 증기를 이용한 목조 외륜선이 등장했으며, 1832년 외륜기선이 증기기관만 사용하여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다. 이어서 19세기 후반기에는 프로펠러 철선이 등장하였는데, 특히 1861년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으로써 프로펠러 철선시대가 촉진되었다.  


 

태평양시대

20세기에 접어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강대국들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미국은 1776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9세기 전반기까지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만 팽창 정책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는 마한의 해양전략론을 논거로 삼아 바다를 통한 대외 팽창으로 눈을 돌렸으며, 그 덕분에 미국의 사업가들은 시야를 해외 시장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극동 진출의 중간 지점으로서 하와이와 중남미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영토 확장 정책과 해군 확장정책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반면 17세기까지 강력한 강국으로 성장했던 러시아는 러시아는 크리미아전쟁(1853∼1856)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 영국과 영국의 후원을 받은 일본에 패배함으로써 해양강국으로의 도약 운동이 좌절되고 말았다. 이후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더욱 발전하며 초일류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 본 원고는 한국해양재단이 2010년-2011년 추진한 "해양교육교재 개발" 및 "해양교육 교과관련 콘텐츠 개발" 사업의 성과물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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